성경의 집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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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경의 집 작성일26-03-18 15:10
설교자 : 성경의 집
설교본문 : 이사야 22: 1-14
설교일자 : 2026.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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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에대한 경고

                                               이사야 22: 1-14 찬송가 279

1. 예언자들의 언어

   ➀. 애굽의 멸망을 이시야가 징조와 예표로 

         3년동안 벌거벗을 몸으로 다닙니다

   ➁. 바벨론의 멸망을 네겝의 회오리바람처럼 몰려오는 것을

          혹독한 묵시로 듣고 본 것을 전합니다

        마치 이사야 본인 자신의 멸망처럼 격습니다

     요통. 고통.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같은 고통이 엄습합니다

     괴롭고 놀라고 어지럽고 두렵고 떨리는 일

     그냥 말로만 전하는 일도 피를 말리는 일일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다니엘. 에스겔의 이야기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고통스럽고 두렵고 떨리는 일은 물론이고 

      수치스럽고 모욕적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그런 이야기가

 이사야가 마치 자기가 마치 

애굽이고 바벨론 당사자 인 것처럼  온 몸으로 당하는가?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글자 그 이상입니다...

말이나 글자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도 거칠고 격한 언어

 그 이상의 언어로 말씀하시는지.....

결국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으로 오십니다.........

      ➜. 1:2...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다.

        이러한 성경의 언어를 알지 못하면 

        성육신마저도 신화나 교리가 되버리는 것입니다

2. 세상 나라. 왕들. 민족. 백성들.....그들의 흥망성쇠

    회개하고 돌아가는 자기 백성들에게 관심이 있다......

   그냥 반성 좀 하라는 이야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인생을 관통하는

   인생 전체를 그 본질. 바탕에서 개념짓는 단어입니다....

. 나귀...내 백성은.......................1:3

8: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끝까지 거짓말로 산다..........................................

. 환상. 계시. 예언. ....그 내용이 무엇?......

      영원을 보는 눈.......초자연적인 신비 현상? .......

      새 일. 새 창조. 영생의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

3.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이상異像환상幻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

    이상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

     해변 광야?      두마?    라합?

    이상 골짜기라는 이름에는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산과 골짜기의 대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산의 높은 곳에서는 먼 데까지도 전망이 가능하나,

     어두운 골짜기에서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못한다. 

    결국은 유대교란 종교를 만들어버리는 것.

    이상에 관한 한 예루살렘은 골짜기와 같다. 

   선지자가 그 이름을 통해서 풍자하고 있는 바,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을 상실한 예루살렘은 

    임박한 재난 앞에서도 회개하기는 커녕

   기쁨으로 소동하며 분요하는 모습만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 22: 2. 12. 13

.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어찜인고 = 네게 무슨 일이냐? What to you이다.

     이 물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떼를 지어 지붕에 올라감은 

     퇴각하는 적군 -산헤립 군대의 모습을 

     지켜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본문의 상황이 B.C.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 산헤립은 히스기야로부터 상당한 양의 공물을 받고

     그의 군대를 철수시켰다           왕하 18:14-16.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속임수 조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내용이 얼마나 치욕적 피가 거꾸로 소는 일인데도

      이제 살았다고 지붕에 올라가서 구경하고 좋아할 일?

. 훤화하며 =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 2

      예루살렘 성읍을 떠들석하게 만든 이 소동은

     기쁨과 안도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백성들은 퇴각하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진 양, 자만하며 

      허랑 방탕한 환락에 도취되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전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즐거워하다는 말은 

       헛된 자만에서 분출되는 득의 양양한 기쁨을 나타낸다.

. 너희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결박을 당하였도다 - 3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백성들을 지켜야 할 관원들이 오히려

     제 몸을 보전히기 위하여 활도 팽개치고 도망하다가

     포로가 되어 결박을 당한다

     명예와 용기가 자취를 감추고 

     수치와 비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것이 이상을 상실한 백성들의 결국이다. 

     활을 버리고는 직역하면 활로부터이니 그 의미는 

       활을 쏴보지도 못하고 혹은 아예 저항을 포기하고이다.

.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 4 

      .누가복음  23:28

     예루살렘의 미래가 이러하므로 

     선지자는 기쁨으로 환호하는 성읍의 한 가운데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그는 어떠한 위로도 거부한채 실컷 울기만을 소원한다.

      이상을 결여한 시대에 ...

     환상과 계시 예언...영원을 잃어버린 시대. 백성들

선지자는 얼마나 특이하고 외로운 존재인지! 

               ➜. 파수꾼.....21:11, 12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어둠을 응시하며.....

      모두가 기쁨에 들떠 분요할 때 홀로 슬픔에 잠긴다.

      그는 백성을 향하여 선포하는 자이며

      동시에 백성과 그 운명을 함께 나누자는 자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물은 백성의 고난에 참예하는

       그의 애끊는 가슴에서 흘러 내리는 것이다.

4. 엘람 사람...기르 사람          6-7

   예루살렘 성을 포위 공격하는 엘람과 기르가 등장한다

    여기서 각각 바사와 메대 대신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페르시아 군대 중에 주도적인 두 나라가 진술된다.

    이 두 나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 군대의 위용은

   곧 궁사들과 전차 부대와 기병대와 보병대로 구성된다.

. 화살통. 병거.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마다 

    적들의 병거가 가득하고,

    성문 앞에는 마병이 정렬해 있는 

    일촉 즉발觸卽發의 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8. 9. 10. 11

     마사크는 사람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

     여기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덮개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였다.

   ㉠.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수풀 곳간의 병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 무너진 곳들이 많은 것도 보이고

   ㉢.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성읍 내의 가옥을 계수함은 그것을 헐어내기 위함이요

        그것을 헐어냄은 성벽을 견고케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함이다.

    ㉤. 두 성벽 사인에 저수지도 만들었느니라

.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존경하지 아니 하였느리라

   선지자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백성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의 이면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없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하신 자 이 일을 경영하신 자 문자적으로는

   각각 그것을 만드신 자와 그것을 빚으신인데,

    이는 유다 앞에 놓인 위기를 만드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징계를 징계로 알고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는

     그들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 히스기야에서 시드기야까지.....끝까지 거짓말로.............

22:11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2: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울일과 웃을 일

         부끄러운 일과 자랑스러운 일....................

         사람에게 이 구분이 안되면.........................

        인간의 때. 오늘이라는 인생의 때는 무엇을 할 때일까?

           ✔. 회개하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들일까.......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22:13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14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회개에의 기대는 깨어졌다.

     백성들은 미래의 재난 앞에서 허망한 쾌락으로 일관하였다.

     ➜. 니느웨가 보인 반응과 비교. - 3:4-9. ...

           요나 하루 동안 건성으로

       vs 이사야. 예레미야..... 평생 목숨을 걸고.............

그들의 행위는 미래를 상실한 데서 오는 

자기 파멸적 경향성일 수도 있고

또는 선지자가 내일 죽는다고 하니

그 말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라도 

오늘만큼은 실컷 즐기며 놀자는 조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없으며 따라서 인생에는 

                           무슨 의미도도 목적도 영원한 것도

가치있는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먹고 마시는 쾌락의 한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 네가 좋으면 된 것 아니냐?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네 자신이 기준이고 의미고 목적이야...........................

     오늘날 현대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다니엘은 어리석은 광신자 

                                              고전 15:19,32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음을 엄숙히 선고한다

. 탕자의 귀환?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Rembrandt

      탕자의 귀환이 아니라 아버지의 긍휼. 용서

거지도 그런 거지가 어디 있을까 

그래도 무릎 꿇고 아버지에 안겨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두 손으로 덮고 있다.

그러나 큰 아들의 그 고고한 뻗뻗함이 .......

동생을 멸시하다 못해 금방 막대기로 후려 칠 것 같아......

       죄인이란 회개할 힘도 없는 자들이다.

                 그런 지각이나 의지. 열정이 없다

      알곡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가 

      긍휼의 보자로 감싸버릴 때에

      그 죄인에게 회개가 터지고 싹이 나는 것이다

      죄인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뿌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는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다만 일시적으로 가리울 뿐이었으므로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있었다. ................10:3,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이 같은 필요가 소멸되게 된 것이다......

      단 번에 모든 죄를 영원히 용서하셨다

 

          왜 그렇게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