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집

7월 세미나 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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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경의 집 작성일26-07-20 14:46
설교자 : 성경의 집
설교본문 : 창세기 2: 1-3
설교일자 : 2026. 07. 26.

본문

 

      제 7일의 안식... 역사의 의미와 방향

   ⅰ. 7일의 안식이 지향하는 역사의 의미와 방향

         1. 역사의 흐름과 방향

         2. 하나님의 안식 쉼.

         3. 피조물의 안식은......

         4. 노아를 통해서 반복되는 확인..가인과 아벨 그리고 노아

             제 7일의 안식이 노아의 안식으로 이어지는 그 흐름.


. 최후의 심판의 모형으로 나타난 

      노아 홍수 심판의 근거가

      왜 혼인 관계의 왜곡으로 묘사가 되어 

       제시 되어졌는가? 6:1-7  

    ..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을 멸하심. 

 

. 7일의 안식이 지향하는 역사의 방향

    1. 역사의 흐름과 방향 거시적인 안목

        ✎. . 저녁. 어둠 

               . 아침 .

 영원한 안식으로의 초대 이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녁에서 낮으로 흐르는 구속 역사의 리듬

다른 말로 역사의 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지러진 빛, 저녁으로부터 출발하여 아침을 거쳐 

충만한 낮으로 향하는 구속 역사의 리듬이

그 한 구절 안에 힌트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다시 밤이 없다. - 21:22-25 22:5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우리에게 허락된

날들 새 창조의 시간으로 잘 사용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된 이 날들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만큼 지어져 가다보면

영원한 안식의 날이 우리에게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 곳에는 저녁이 없습니다. 그 곳에는 캄캄한 밤도 없습니다.

그 곳에는 영원한 빛만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 라는 구절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일곱째 날은 끝이 없으니까요

시간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

그 일곱째 날 안식의 날은 역사의 끝이요

영원한 빛의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과정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안식 쉼

하나님은 피곤치 않으시고 곤비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여섯 째 날까지 천지와 만물을 다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까지 만들어 놓으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습니다.

유독 여섯째 날에만 심히 좋다 라는 단어를 쓰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도덕적이며 인격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백성 - 인간이 만들어짐으로 해서 그 창조가 비로소

하나님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천지 만물이 인간의 다스림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 속에 충만히 거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안식

그러니까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을 쉰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다른 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과 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발휘되어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 분께 순복 하는...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거하실 상태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만족하게 

그 처소에 거하시는 상태를 하나님의 안식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神的인 만족의 상태 

. 인간과 피조물의 세계를 거처로 삼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안식

그러니까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과 지혜를 온전히 발휘하셔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를 완성하셔서 

그 처소를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그 속에 충만하게 거하시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인간 쪽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을 처소 삼아 거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영광에 정상적으로 응답을 하여 

그 분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상태

안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게 성경이 말하는 』  『안식

그러니까 안식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쪽이나 우리 쪽이나

무언가를 최선을 다해 행하고 있는 상태가 안식인 것입니다.

. 나는 너의 집이 되고 너는 나의 집이 되고.....

       평안 안식 만족 행복.......

      사람을 하나님의 집. 성전 처소로 삼으시고 안식하심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을 포함한 천지 만물의 안식

.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과의 영원한 안식이 

      어떻게 온전해지는가?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고 천국을 잘 아는 것이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 15:13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 세워진 건물이요,

    그리스도 예수 스스로가 그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자랍니다.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14:2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그래서 하나님은 그 참 안식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처소 됨을 위해 침 삼킬 틈도 쉬지 않으시고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렇다면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과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희생하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그 안식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처소로 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3. 피조물의 안식은 

   . 순종과 신뢰 그리고 사랑 

   . 은혜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안식으로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런데 안식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지켜졌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죄한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내었을 때

그것이 그의 의가 되어 안식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내지 못했고

타락을 함으로 안식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 피조물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다.

       선악과의 이유 ....

       순종과 신뢰. 사랑이라는 것마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가

     인간에 의해 뭉개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지요.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나약함을-피조물 됨을

     확연하게 구별을 해 줌으로 해서

. 하나님의 안식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납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자율성과 이성과 인격을 가지고

    언제든지 기고만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 입니다.

      ✔. 사람의 생명은 생물학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격

. 인간답다. - 피조물 다움이 바탕 

    그래서 인간이 실패한 그 선악과의 시험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통과해 내시고

     그 시험 결과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轉嫁전가시켜 

주심으로 해서 그 백성들이 참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식으로

인간에게 안식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안식에 있어서 

인간 쪽에서의 기여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하나님의 장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타고 넘으려 할 때의 비참한과 처절함을

그 분의 백성들에게 이성과 인격 속에서 주지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의존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은 완전히 다르다라는 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존재에게 가르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순종해야할 그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흘러넘치시는 참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 성경이며 그 것이 십자가 인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원합니다.

행복 추구권 행복할 권리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안식 샬롬 평안 행복 만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에 대한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 성전이나 궁궐은 많이 일그러진 형상......

    집. 거처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4. 노아를 통해서 반복되는 확인.....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생명의 라인과 죽음의 라인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안식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십시오.

창세기 4장과 5장이 가인의 후손과 아담의 후손의 계보를 

대조하여 기록하면서 그 계보를 어디로 끌고 갑니까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끌고감. ➜. 노아... 위로 안식.

     ➜. 가인의 계열과 아벨의 계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선택?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심.

아브라함이 아브라함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 아벨. 에녹. 노아...................

          노아는 하나님의 은헤를 입었더라.6:8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식이 어떻게 올 것인지를

그 계보의 대조를 통해서 밝히고 계신다. 그 족보를 잘 보시면

. 가인의 후손에도 에녹이 있고 

    아담. 아벨의 후손 중에도 이 있습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봉헌 된이라는 뜻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서 제일 처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을 쌓고 그 성 이름을 아들 이름을 따라 

               에녹성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7대손 에녹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 = 이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 라고 짓고 오히려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의 말로에 대해 경고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삽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에녹이 어떻게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까? 믿음으로...........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은혜로.......그러니까 

에녹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 에녹의 대조는

심판으로 던져질 죄인들은 

무엇이든 자신에게 봉헌하려 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그 자신이 하나님께 봉헌 된

                          사람이라는 것을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봉헌된 자들은 

   성을 쌓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살게 되지만

   하나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남을 밟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의 삶의 원리를 질타하며

   심판을 선포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봉헌된 아담의 7대손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을 하지요.

. 가인의 후손 중에도 라멕이 있고 

    아담. 아벨의 후손 중에도 라멕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두 라멕을 또 비교합니다.

   가인의 후손 라멕과 아담의 후손 라멕이 어떻게 다를까?

4:1924 19 라멕은 두 아내와 함께 살았다. 

      한 아내의 이름은 아다이고,

      또 한 아내의 이름은 씰라이다.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을 치고 살면서

    집 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유발은 

     수금을 타고 퉁소를 부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2 또한 씰라는 두발가인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두발가인에게는 나아마라고 하는 누이가 있었다.

23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와 씰라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24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라멕의 후손들은 동철로 기계를 만들고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고,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됩니다.

. 먹고 살며 예술 활동이 무엇이 잘 못 된 것인가? - 6:33

한 마디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세상의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매한 인간들은

 그러한 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자기들에게

안식이 주어질 것이라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 라멕의 후손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고 약해빠진

노아라는 바보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안식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나 꾀로 세상을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산 위에다가 배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식은 어리석고 미련해 보였던 노아에게 주어졌습니다

          ✎. 愚公移山우공이산

세상의 모든 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의지해서 안식을 구하려다

모두 저주의 물에 빠져 죽을 때

노아는 바보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그와 그의 가족 8명만이 안식의 배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순종을 인간 스스로는 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어 그를 순종하는 자로 만드셔서

기필코 안식을 주고야 마시겠다는 것이 노아의 이야기..

6:7주께서는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하고 탄식하셨다.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이 언약의 저녁에서 출발해서

캄캄한 밤의 시간을 지나 왕국의 아침을 맞고 충만한 빛으로

완성이 될 것임을 미리 암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안식은 절대 인간의 힘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인간의 타락으로 확증시키신 후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 안식이 완성되어져 가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창세기의 역사

결국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 천하에 증거하신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처럼 

세상의 힘을 좇다보면 안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세상 사람들이 바보라고 손가락질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열심히 살다보면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이 땅에서도 누리실 수 있고 이제 곧 닥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영원히 그 안식을 누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3:1718... 4:1...46,11

17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4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경을 읽을 때에 두 가지 관점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는 전체의 흐름입니다.

다는 하나는 

개별적인 세세한 사건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잘 아는 일

먼저 전체적인 흐름입니다

특별히 창세기는 창조로부터 노아홍수까지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12아들의 이야기

요셉의 이야기로 끝난다.      - 심판과 구원

창조 타락으로 심판 다시 새로운 창조의 틀 구조를 보게 됩니다.

 

. 최후의 심판의 모형으로 나타난 

    노아의 홍수 심판의 근거가........... 6:1-7

    왜 혼인 관계의 왜곡으로 묘사가 되어 제시 되어졌는가?

      ➜.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을 멸하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혼인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신랑이신 하나님과 신부인 교회의 영원한 혼인 언약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혼인 관계의 왜곡은 곧 하나님의 언약의 왜곡이므로

그 혼인 관계의 왜곡이 심판의 전제로 묘사가 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혼을 금했던 것이고 간음한 자들을 돌로 쳐 죽인 것이지

도덕법 상으로 이혼이나 간음이라는 죄가 

다른 죄보다 더 중한 죄이기 때문에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건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진 표적 sign입니다

      .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백성 중에 끊어진다.

그렇다고 이혼이나 간음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 성경을 윤리도덕의 교과서로 읽으면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다.

혼인 관계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은혜의 옷자락으로 감싸셔서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처소로 삼아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한 몸이 되어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해 주실 때 

비로소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기에 바로 그 영광스러운 현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인

       그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꼭지 점으로 하여

       그 과녘 지점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혼인 언약을 그림자로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사람과 짐승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성경은 그렇게 창세기 1장에서부터 그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는

하나님의 목적과 역사의 결론을 암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를 처소 삼아 거하셨는가?

하나님 자신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라는 것이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우리가 종국에는 하나님의 처소로 완성될 것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삼위 일체 속으로 초대되어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속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그 죄로 물든 인간을 

더 이상 당신의 처소로 삼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죄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고기 덩어리...그게 사람의 현실

그 때부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보면 인간들에게서 떠나가신

. 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어떤 분이 그대로 담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참 성전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담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그대로 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담고 계신

       하나님의 처소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주님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지요?

바로 그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주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1:3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어구를

동일한 한 분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형상 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최초로 쓰인 곳이 창세기 1장입니다.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은

예수님이 그렇듯이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바로 그 지점을 목표 지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 요17:21-23 인생의 방향 ....세상 영광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자비, 절제 등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잖아요.

하나님은 그러한 요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그러한 것들이 온전해지도록 완성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으로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고

동시에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바르게 파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이다

   강제나 억압의 수단이 아닌 

   설득과 교육과 훈련과 경험으로 체득하게 하시기 위해

   역사와 인생을 허락하신 것이고 

   그 역사와 인생을 경륜해 가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만이 

   이 역사와 인생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여

   이 역사를 해석하고 그 역사가 의도하고 있는 지점을 향하여

   우리의 삶을 맞출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아는 사람들만이 

   인생의 목적을 정확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이고

   그 인생의 목적을 향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파리 대왕 vs 똥파리의 차이점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대왕이나 똥의 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은 

  똥파리가 파리 대왕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파리가 사람이 된다는 말보다 더 놀라운 충격적인 것.....

       왜 몰라? ......타락 이전을 몰라!   영생이 무엇인가를 잘 몰라.

구원받아서 새로운 창조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내용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담고 있는 내용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과 노아의 구원이라는 

심판 속에 꽃 피는 은혜의 구원이

바로 성경과 역사가 

우리에게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것을 한 단어로 줄이면 은혜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 창조와 타락 심판과 구원 영원한 새로운 창조

우리가 성경을 잘 보면 성경은 온통 

질서와 조화에서 혼돈과 부조화로

그 질서와 조화가 깨어지고 

하나님은 다시 그 무질서와 혼돈과 부조화를 질서와 조화로

세우시는 동일한 패턴의 반복임을 쉽게 찾아내실 수가 있다.

성경에는 질서 무질서 새 질서. 조화 부조화 새 조화.

창조 역창조 새 창조의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시고

인간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그 질서를 깹니다

 그 것이 곧 불순종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고 다시 새 질서를 세우십니다.

환언하면 하나님께서 조화롭게 창조해 놓은 것들을

왕이 되고 싶은 인간들이 부조화로 망가트려 버리고 

하나님은 그 부조화를 심판하시고

다시 당신의 은혜로 조화롭게 세우시는 것이 성경 전체의 내용..

하나님의 창조를 

인간들이 그들의 죄로 망가뜨리고 부수어 버리면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그 망가지고 왜곡된 것들을 

완전히 멸해 버리시지만

그 역 창조의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어떤 무리들에게 은혜를 쏟아 부으셔서 그 속에서도 

실패치 않으시고 다시 새 창조를 완성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와 성경의 기록을 통해 

새 창조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  은혜의 완전성을 배우게 되는 것.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자신들의 성벽을 쌓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고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네피림으로, 용사로, 유명한 자로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타락한 역창조의 상태를 완전히 멸해 버리십니다.

. 그러나 그 역 창조 속에서 꽃 피는 새로운 창조가

    그 폐허의 자리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이 8장에 나옵니다. 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홍수로 멸망한 땅에 새로운 잎사귀가 등장합니다.

어떻게 온통 사람들과 짐승들과 기식하는 것들의 시체로 뒤 덮인

폐허의 땅에 새로운 것이 생겨났을까요?

성경은 일부러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동원해서 폐허 속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있음을,

다른 말로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포함한 성경 전체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홍수와 불로 멸해지는 심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역 창조 지옥을 만들어가는 

세상의 죄를 말끔히 소멸하여 씻어버리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새로운 자들에게 주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 우리에게 겁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겁은 세상이 먹어야지요.

우리가 진짜 성도가 맞다면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는 노아의 홍수 사건과 같은

심판과 저주와 멸망의 사건들을 보면서 두려움이 아닌 

감당할 수 없는 감사로 빠져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엄청나고 무서운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방주를 준비하시고

심판이 이루어지는 그 현장에서도 방주로 노아를 

들여보내시고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고

홍수 중에도 권념Care하시는 장면을 보시면서 

우리가 지금 뭐하고 살아가는가를 보시면 됩니다.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혼돈과 공허의 상태에서

당신의 백성들의 생육과 번성을 이루어 내시는지 

그 하나님의 열심과 은혜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열심 앞에 철저하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했던 

아담에게도 생육과 번성의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살게 될 

새로운 피조물의 상징인 노아에게도

생육과 번성의 명령이 동일하게 떨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생육과 번성의 약속,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과 마귀의 세력들이 

          아무리 역 창조로 방해를 해도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생육시키고 번성시켜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그러한 명령과 언약 속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최초의 하나님의 백성인 아담과 하와에서

그리고 모든 기식하는 것들이 다 죽어버린 

역창조의 종결 상태에서 은혜를 입은 

새 사람 여덟 명과       

새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에서

그리고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의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어떻게 생육되고 번성이 되었습니까?

8: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7:9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은 큰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의 새 창조의 완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목표 지점을 설정해 놓으시고

역사와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 장면을 성경에서 보면서

아무리 인간과 마귀들이 타락한 역사로 방해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새 창조는 

반드시 완성이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 전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고 모두 구원하실 것이라는 

성도의 견인교리도 그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떠한 세상의 방해나 공격에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한 곳만 바라보면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창조와 타락 

새로운 창조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멸망당해 버릴 쓰레기들 속에서도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부으셔서

새로운 창조를 해 내시는 것입니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노아가 오늘날 성도들. 교회

     이 노아는 비둘기가 물고  

       새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를 보고 판이 끝난 것을 확인

. 세상 영광을 구하며 영역 다툼 하지 마세요.

. 이기고 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갔는가를 생각.

    사람들은 저마다 이기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어떤 분쟁이나 다툼이 있을 때

    항상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분쟁과 다툼 속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밝히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누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되어졌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먼저 자신의 허물을 생각하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 백성

설사 상대방이 진짜 죽을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려 드는 사람은

절대 기도의 자리, 성숙의 자리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남을 정죄하고 죽이려는 사람

다른 사람 혼내주려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존재할 수 있는 자 입니다.라는

기도를 할 수 가 있을까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요.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

나는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기도와 참회와 회개를 하는 자리로 내려갔는가? 

그 일이 나의 신앙 성숙에 도움이 되었는가? 인 것입니다

     ➜. 세리의 기도. 

            거지 소경 바디매오의 자리

            거지 나사로의 자리. 

           탕자의 자세가 나오는가?